고인돌군의 분포된 입지를 살펴보면 고창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범위 내에 분포되어 있다.
매산 마을은 화살봉(표고 400m)의 봉우리로부터 서남을 향하여 활 모양으로 뻗어 내리는 산지맥을 배경으로 하고 앞에는 주진강 상류인 고창천이 가로 흐르고 있으며, 마을 뒷산은 말안장 모양의 지형으로 그 서방은 섬틀봉(표고158.6m)이라는 삼국시대의 산성이 있는 봉우리가 있다.
죽림리 및 상갑리 일대의 고인돌은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3기가 발굴 조사된 이래 1990년 전라북도와 원광대학교의 주관으로 3개월에 걸친 현지조사에 의해 447기가 조사되었으며, 파괴매몰한 108기를 합하면 550여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조사이전의 파괴된 기수를 합하면 대략 1,000여기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숫자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 이른바 북방식이라 불리는 탁자식, 여러 개의 벽석이 지상에 노출된 지상석곽 형, 남방식인 바둑판식 등 다양한 형식이 분포되어 있어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 및 성격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죽림리, 상갑리 일대 고인돌유적은 동양의 거석문화의 중심이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밀집분포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된 것으로서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묘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당시인들의 정신상, 사회상, 묘제상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한편 무리를 이루고 있는 이 고인돌군은 일견하여 흐트러짐이 심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 즉 북방식 고인돌이 존재하는 해발 180m의 내외의 산록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동쪽 지역과 해발 158.6m의 성틀봉 산록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서쪽 지역군은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두 산이 이어지는 골짜기에 위치한 고인돌군의 경우는 그 같은 규칙성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정밀조사에 의하면 이것도 역시 열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이 열이 지니는 의미는 고인돌 축조 계층 내에서의 위계에 따른 배열 등으로 해석되고 있을 뿐인데 그 같은 계층 분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고창군 고인돌 유적은 당시인들이 주검을 묻기 위해 마련한 묘제로서 큰 규모의 돌로 축조할 수 있었던 축조방법 및 기술, 대규모의 밀집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은 매우 신비스럽고 중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죽림리, 상갑리 일대 고인돌유적은 거석문화의 산물로서 가장 밀집 분포된 고인돌 유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